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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범죄 보도 만능 해결사인가?

작성일 : 2025-01-20 09:09:11 조회 : 39

출처  '조현병'은 범죄 보도 만능 해결사인가? ㅣ 단비뉴스



[김예은 기자]


[언론윤리] 근거 없이 정신질환과 범죄 연관 짓는 보도 주의해야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갖게 되는 데는 언론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서울시정신건강통계’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신건강에 대한 서울 시민의 인식을 조사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보고서를 보면 ‘뉴스 기사, 매스미디어’, 즉 언론 매체가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무려 91%가 언론 매체가 정신질환에 부정적 편견을 갖는데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매우 영향을 준다’는 응답도 32% 가까이 됐다. 직접 정신질환자와 접촉한 경험이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72.7%라는 것을 생각하면 언론 매체가 주는 영향을 매우 크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조사를 보지 않더라도 범죄 보도에서 피의자의 정신질환을 부각하는 것이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언론 보도가 범죄와 관련해 정신질환을 언급할 때 자칫하면 제대로 된 의학적 측면의 시각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찍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범죄가 발생한 사회적 배경을 배제하고 범죄를 오로지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기협 등과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 제정

2021년 보건복지부는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가칭)정신건강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해 배포하는 목표가 포함됐다. 정신건강 이슈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유도하기 위해 정신질환이나 자살, 음주 등과 관련한 잘못된 인식이 조성되는 것을 막는 것이 전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주요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것이다.

2017년에도 보건복지부에서 정신건강 언론보도 권고기준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2022년에는 먼저 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함께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을 발표했다. 드디어 지난해 11월 21일에는 보건복지부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 효과를 줄이기 위한 ‘정신건강 보도 권고기준’을 만들어 발표했다. 국민의 정신건강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언론의 정신건강 관련 내용 보도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정신건강 보도 권고기준은 정신질환(정신건강)에 대해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보도를 하자는 취지에서 5가지 핵심 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픽 김예은

정신건강에 대한 제대로 된 보도를 통해 사회적 편견을 줄이자는 취지로 마련된 만큼 ‘정신질환은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제시했다. 또한, 정신질환을 사건·사고와 연관 지어 보도하는 사례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신질환을 범죄 동기·원인과 연관시키는 데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어 기자들이 사건·사고 보도에서 정신질환을 언급할 때의 다양한 영향을 고려했는지도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했다.

기사 제목 등에 들어가는 정신질환 관련 단어 영향 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기사 유통의 주요 창구가 되면서 기사 제목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자극적인 제목일수록 독자의 클릭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사 도입부에 자극적인 내용을 담는 것도 기사 노출 시간을 늘리는 데 영향을 미친다.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범죄나 사고를 다룰 때 정신질환과 관련된 자극적인 표현을 기사 제목과 도입부에 제시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은 아예 ‘기사 제목에서 정신질환 관련 언급을 지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문화일보>는 “조현병 앓던 중 손녀 살해·손자 상해 50대女…징역 6년”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조현병을 앓던 50대가 자신의 손녀를 살해하고 손자에게 상해를 입혔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사건을 다룬 언론사 중 전국 일간지 네 곳 가운데 ‘조현병’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사용한 곳은 문화일보뿐이었다. 굳이 조현병을 언급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보도할 수 있는 기사였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21일 손녀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들의 제목들. 그래픽 김예은

(중략)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보도 주의해야

지난해 9월 <서울신문>은 ‘“또박또박 쓴 음담패설”...동사무소 직원에 ‘29금’편지 건넨 노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기재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애인 구하는 할아버지’라는 게시글을 인용한 기사였다.

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는 A 씨는 할아버지 민원인에게서 음담패설이 가득한 종이 4장을 받았다. A 씨는 “해당 편지를 다시 달라고 한 뒤 사진을 다 찍었다. 신고하려고 하니까 팀장님들이 말렸다. 유명한 정신병자라더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뭐가 맞는 거냐. 신고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별로 소용없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고 보도됐다. 서울신문은 해당 내용을 토대로 ‘2024년 지자체 공무원 악성민원 감정노동 실태’ 자료를 인용해 악성민원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 노인이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지, 왜 유명한 정신병자로 취급을 받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은 없었다. 실제로 정신질환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로 ‘정신병자’ 운운하는 보도를 한 것이다.

이처럼 피해자나 주변인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확인도 없이 정신질환을 범죄와 연관 짓는 보도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유발할 수 있다. 위의 기사처럼 ‘정신병자’라는 말을 기사에 그대로 노출하거나 정신질환과 범죄와의 연관성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제정한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1’에는 ‘다양한 취재원의 코멘트를 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보도를 할 때는 객관적인 정보제공과 정신과 병력에 대한 객관성 유지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정신건강 전문요원, 정신질환자 본인과 가족의 말을 통해 충실한 보도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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